[언론에 비친 츄츄] 감정 담은 이모티콘, 그 속에 꿈을 담은 청년들 ‘스티팝’

2019.07.03

[더퍼스트=이창희 기자]지금으로부터 10여 년 전 만 해도, 우린 통화와 문자 메시지가 전부인 2G 피처폰 시대를 살았었다. ‘카카오톡’ 같은 메신저도 당연히 없었다. 그때 감정이나 느낌을 표현하고 싶으면 몇 개 되지 않는 활자를 동원했다. ‘^^’, ‘ㅠㅠ’ 같은 것들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많은 것이 변했다. 예쁘고 귀여우며 기발하기까지 한 이모티콘들이 속속 등장했다. 감정(emotion)과 기호(icon)가 합쳐진 용어 ‘이모티콘’. 감정을 꺼내놓는 기호라니 굉장히 아날로그적인 디지털 문화 아닌가?

이제는 이모티콘 없이는 대화조차 불가능할 정도로 크게 확산된 문화. 자연히 시장도 커지고, 상품 가치도 나날이 높아지고 있다. 한 가지 고무적인 건, 이러한 이모티콘의 제작과 생산 분야를 대한민국이 선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한 선도자들 중에는 오늘의 주인공도 포함된다. 세계 시장을 무대로 자신들의 이모티콘을 널리 퍼뜨리려는 스타트업, ‘스티팝’이다.


스티팝의 두 기둥. 조준용(왼쪽)·박기람 공동대표

 

‘외국물’ 먹은 두 청년의 의기투합
스티팝은 동갑내기 친구인 박기람·조준용(28) 공동대표가 함께 꾸린 회사다. 오랜 지기인 두 사람은 충북의 한 국제학교에서 처음 만났다. 기숙사 생활의 특성상 거의 24시간을 붙어 지내다보니, 자연스레 다양한 활동을 공유할 수 있었다. 이들이 처음 만들어 본 것은 회사가 아니라 동아리였다. 영어 토론 동아리도 만들어 각종 대회에 출전하기도 했고, 수학 동아리를 통해 후배들의 보충학습을 돕기도 했다.

“동아리를 만들어 본 것도 창업 훈련의 하나로 볼 수 있지 않을까요? 학교는 전혀 개입하지 않고, 우리가 회칙도 만들고 멤버도 구하고 했으니까요. 지금 생각해보면 어린애 소꿉장난 같지만, 당시 저희는 엄청 진지하게 했었어요.(웃음)”(박기람 대표)

기숙사 룸메이트라는 것 외에 이들의 공통점은 또 있었다. 두 사람 모두 이른 나이에 외국 생활을 겪었다는 점이다. 박 대표는 영국에서, 조 대표는 미국에서 초등학생 시절을 보냈다. 한국과 달리 다양성에 초점을 맞춘 교육을 받을 수 있었고, 자연스레 ‘해야 하는 것’보다는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DNA가 이식됐다.


풋풋했던 두 대표의 학창 시절

 

서로 각기 다른 대학으로 진학한 이후에도 이들의 생활 패턴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강의실에선 일방적인 강의를 듣는 대신 토론을 했고, 도서관에서는 관심 가는 책을 파헤쳤다. 어쩌면 이들은 이때부터 ‘창업 노선’을 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둘 중 먼저 국가의 부름을 받은 건 박기람 대표였다. 박 대표는 군대에서 창업 관련 서적을 닥치는 대로 섭렵했다. 책을 읽고 궁리를 하다 보니 아이디어는 절로 떠올랐다.

“저에게 군 생활은 상상 속에서 나만의 회사를 만들고 부수고 하는 구상의 장(場)이었어요. 남이 어떻게 생각할지는 고민하지 않고 떠오르는 대로 생각해봤죠. 그 과정에서 얻은 영감도 많았다고 생각해요. 이런 저런 생각들을 실제화 시키려면,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도 고민할 수 있었고요. 예비 창업가가 되어가는 과정이랄까요?”(박기람 대표)

조준용 대표는 1년가량 늦게 입대했다. 사단장 운전병으로 복무했던 그 역시 혼자 대기하며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많았다. 조 대표도 그때마다 창업을 꿈꿨다. 조직에 매몰되는 취업보다는 스스로 땀 흘려 무언가를 일구는 일을 하고 싶은 생각에서다. 샐러리맨으로 평생을 보낸 아버지 역시 ‘너만의 일을 해 보라’고 입버릇처럼 조언했다.

조준용 대표가 전역을 앞뒀을 때, 먼저 사회로 복귀한 박 대표로부터 연락이 왔다. 박 대표는 전역 축하보다 먼저 이 한 마디를 건넸다.

“이모티콘으로 창업을 할거야, 같이 해볼래?”


2018년 샌프란시스코 테크 크런치 디스럽트에 참여한 두 대표

 

“왜 하필 이모티콘이냐고?”
스타트업의 바람직한 접근법은 일상 속에서 문제를 인식하고, 그 솔루션을 비즈니스로 승화시키는 것이다. 박기람 대표가 이모티콘 비즈니스를 선택한 과정도 비슷했다.

전역 후, 여느 때처럼 영국 친구와 페이스북 메신저로 안부를 주고받던 도중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대화 도중 이모티콘을 넣고 싶어도 사용할 수 있는 게 거의 없었고, 사용 자체도 불편했던 것이다. 국내 유저들은 카카오톡을 통해 다양한 캐릭터들과 재미있는 표현의 이모티콘에 익숙해져 있지만, 해외는 그렇지 않았던 것.

‘다양한 메신저에서 다양한 이모티콘을 구현할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들어 해외 시장을 공략하자’

스티팝의 미션이 만들어진 순간이다. 박 대표는 곧바로 행동에 착수했다. 2016년 3월 ‘티콘’이란 이름으로 동지들을 모아 이모티콘을 만들기 시작했다. 3개월 만에 서울창업동아리 주관 데모데이에 도전해 최우수상을 수상하면서 자신감과 확신도 얻었다. 이제 본격적인 비즈니스로 나아가야 하는 상황. 그러나 쉽지 않았다. 멤버 모두가 대학생 신분이었던 데다 저마다 사업에 대한 생각과 책임감에서 온도차가 뚜렷했다. 각기 스케줄을 맞추는 것부터가 어려웠다.

결국 ‘반짝’ 성공 이후 동력을 잃은 멤버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하지만 박 대표는 이대로 포기할 수 없었다. 일단 휴학부터 하며 ‘올인’할 준비를 마쳤다. 그리고 곧바로 전역하는 친구인 조준용 대표를 구원군으로 맞았다.

처음 아이템 얘기를 들었을 때 조 대표는 사실 반신반의 했다고 한다. ‘단순히 친하다는 이유로 동업을 해도 괜찮은 것인가’에 대한 고민도 많았다. 하지만 친구의 행보를 옆에서 지켜보며, 의구심은 점차 확신으로 변해갔다. 조 대표는 “우리는 서로 다른 점이 뚜렷하면서도 그에 대한 이해와 존중이 있다”며 “이런 점이 초기 창업기업에서 시너지를 낼 수 있을 것 같아 함께 하기로 결심했다”고 회상했다.


스티팝 서비스를 시연 중인 조준용 대표

 

실제로 그랬다. 무게중심을 잡고 우직하게 추진하는 것이 강점인 박 대표와 새로운 것에 흥미가 있고 빠른 흐름을 선호하는 조 대표는 서로의 빈틈을 채워줄 수 있었다. 자연스럽게 회사 내부의 운영과 콘텐츠 개발은 박 대표가, 외부 활동과 기술 파트는 조 대표가 나눠맡게 됐다.
이해관계자의 성격이 구별되는 플랫폼의 특성에 맞춰, 박 대표는 이모티콘을 사용하는 소비자의 관점을, 조 대표는 이모티콘을 만드는 작가의 관점을 갖고 비즈니스를 꾸려 나갔다.

회사 간판도 티콘에서 스티팝으로 바꿔 달았다. 이모티콘은 한국에서만 사용하는 단어로, 해외에선 ‘스티커’라 불리는데, 여기에 착안한 사명(社名)이다.

 

新시대의 언어로 新대륙을 공략한다
스티팝이 서비스하는 이모티콘은 이들이 섭외한 작가들이 만들어낸다. 현재 스티팝과 계약을 맺고 활동 중인 작가는 500명 규모. 작가들이 지금까지 만든 이모티콘만 해도 2만개가 넘는다. 이모티콘을 제작하는 것보다 큰 문제는 이를 다양한 메신저에서 구현될 수 있도록 하는 것. 그런데 그 부분의 기술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고민의 깊어질 때쯤, 운 좋게 기회가 찾아왔다. 2017년 가을, 애플에서 ‘아이메시지’를 단순 문자 툴에서 메신저로 개발하기 위해 여러 콘텐츠를 공모하기 시작했다. 많은 개발팀이 몰렸는데, 이때 스티팝도 자체 제작한 이모티콘을 들고 입성의 기회를 잡았다. 이를 통해 현재는 앱스토어에서 스티팝 앱을 다운로드 받아 이모티콘을 구매하면, 아이메시지에서 사용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됐다. 카카오톡에서 이모티콘을 사용하는 것과 동일한 방식이다.

안드로이드의 경우 ‘G보드’라는 앱을 받으면 키보드에 자동으로 삽입되도록 했다. 현재는 왓츠앱(WhatsApp Messenger)에서만 가능하지만 향후 페이스북 메신저와 인스타그램 디엠(DM)에서도 사용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


앱스토어에서 만날 수 있는 스티팝 어플리케이션

 

파일럿 프로젝트를 포함하면 이제 햇수로 4년째, 이들은 본격적인 순풍을 맞게 된 것일까? 다행히 시장성은 밝다. 조준용 대표는 “해외 이모티콘 시장은 이제 막 움트고 있는 수준으로, 수요가 치솟고 있지만 공급이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라며 “나름 ‘이모티콘 선진국’에서 이모티콘을 가장 열심히 쓰던 우리가 만들기 때문에, 경쟁력이 있을 것으로 믿는다”고 했다.

그의 말처럼 스티팝이 겨냥하고 있는 타깃은 해외 시장이다. SNS를 통해 해외 소비자들과의 접점을 꾸준히 늘리면서, 앱스토어에서의 반응을 꼼꼼히 모니터링하는 것도 그래서다. 본격적으로 서비스를 론칭한 지난해 말부터 지금까지, 전 세계에서 스티팝을 이용하는 소비자는 누적 10만명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이중 80%가 미국과 남미의 사용자들이다. 박 대표는 “연내 50만명까지, 2년 안에 2000만명까지 늘리는 게 목표”라고 했다.

이를 위해 해외 시장조사와 마케팅도 열정적으로 진행 중이다. 지난해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테크 크런치에서 스티팝 부스를 열었고, 포르투갈 리스본에서의 웹 서밋 컨퍼런스를 직접 찾아 자사의 이모티콘을 홍보하기도 했다. 해외 현지에서 만난 소비자들이 보인 반응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한국처럼 건당 일정액을 내고 사용하는 대신, 월 구독료를 내고 마음껏 골라 사용할 수 있도록 한 것도 미국과 남미 이용자들이 익숙한 방식을 채택한 것이다.


스티팝의 다양한 이모티콘

 

학창시절부터 자유로운 발상과 적극적인 실천으로 창업의 기반을 다져왔던 두 청년. 이제는 현실의 쓴맛도 제법 알게 됐지만, 그렇다고 몽상을 멈출 마음은 없다. 유의미한 사용자가 모이면 캐릭터 굿즈 제작·판매와 함께 이모티콘을 필요로 하는 개별 기업을 상대로 한 B2B 사업도 구상 중이다.

이들에게 이모티콘은 단순한 그림이나 기호가 아니다. 다채로운 감정을 듬뿍 담은 새로운 시대의 언어다. 그리고 어쩌면, 자신들의 꿈을 이뤄줄 희망의 언어일지도 모른다.